불확실성, 화해 그리고 제목

By | 2008년 9월 25일

미국 금융 대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메릴린치 매각!
선진 금융 공학을 뽐내며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가을밤 하릴없이 떨어지는 낙엽 신세가 되어버렸네요. 미국이 기침만 해도 감기가 걸려버리는 우리의 입장에선 누구의 말처럼 이제 잔치는 끝나고 빈곤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금융 자본주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경제의 불확실성을 예측하고 그 정확도 또한 예리함을 갖춰야 한다던데,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경제 팽창력과 위기관리 수준이 비례한 줄 알았더니만,,, 그도 아니었나 봅니다. 아주 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실물경제에 밀어닥칠 거대한 금융 쓰나미가 예상되는데, 뭐, 우리나라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겠죠…쩝~

하이젠베르크를 무안케 할 정도로, 마치 불확실성의 문제가 경제에서만의 그것인 양 그간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들이 불확실성 문제에 대해 그렇게 왜 그리 매달렸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매달려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미래에 벌어질 무엇을 미리 들춰 보는 일이니 천기누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닐 겁니다. 그래도 자연과학에서 사회과학을 거쳐 인문/미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간 지성이- 미립자 세계에서 우주 차원의 문제까지- 그 무량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필연적으로 내재한 불확실성은 어떻게 대처하고 계신가요?
군사작전하듯이 한꺼번에 정복하시나요, 아니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나요…그간 Waterfall방식이나 Heavy Weight한 방식에서는 마치 교리에 죽고 사는 중세시대 교회들처럼 구조와 체계 중심적으로 한손엔 구조 이론을 들고 한손엔 온갖 도구를 들고 불확실성이 쪼그라 들 때까지 밀어 붙였다고 하던데, 애자일 방식이 차츰 현장에서 힘을 갖는 걸 보면 극복(克服: 적을 이기어 굴복시킴)의 방식은 겉보기에는 강력해 보여도 거품빠진 미국경제 같은 형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라는 말이 나온 답니다. 물은 약해보이나 이걸 이길 게 없다는 말을 하면서 나온 얘기랍니다. 물론 거의 600여 년을 강하게 밀어붙여 고도의 문명과 조물주도 깜짝 놀랄 과학기술을 지닌 인간에게 그리 유약한 말을 하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근대 물리학이 합리적 이성이라는 무기를 갖고 날뛰었어도 ‘시간의 화살’을 무시하여 오히려 ‘설명의 불가능성’이란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이 되고 만 역사를 보았듯이 불확실성을 다루는 문제는 구체적 현실의 긍정성을 밑거름 삼아 규모와 주/객관적 조건에 따라 추정 오차범위를 최소화하는 기민하면서도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방법, ‘물흐르듯한 방법(道若水)’으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물론 애자일 방식의 추정과 계획이 절세신공을 득한 비급^^은 아니겠지만 현실의 이러저러한 문제를 푸는 데 유용하고 긍정적 방법이라고 -그또한,도메인마다 다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불가능성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으려면 불확실성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화해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뭐 아직도 지속되는 큰 물음들이지만 이’화해’라는 화두는 일순 회자된 적이 있지요.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 지식과 실천과의 화해, 자신과 자신의 운명과의 화해, 하다못해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까지… 화해는 서로 싸우고 화해하는 것같은 단순한 의미도 있지만, 그것과 더불어, 헤겔의 말을 따온다면 ‘무엇이든 진정한 발전은 대립이 대립 그 자체로서 지양되고, 화해되어야 가능하다’라는 의미에서의 화해입니다.

‘불확실성과 화해하는 프로젝트 추정과 계획’이란 긴 제목은 이런 생각을 공유하며 지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며 추정과 계획 과정에서의 불확실성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짜증 요인들(특히 인간 군상들^^)과도 화해하여, 꼭 성공하는 프로젝트가 되길 바랍니다.

지금 이 책을 번역하신 이병준 님의 블로그에 ‘불확실성’이란 주제로 아주 재밌는 포스트가 올라 있습니다. 함 들러 읽어 주심을 감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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