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이 책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A Pattern Language』의 번역서로 도시, 건축 등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접하고 있는 주변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 요소들을 올바르게 구성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인 알렉산더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자랐으며,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수학과 건축학을 전공하였다. 그 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알렉산더의 건축 사상은 두 흐름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는 ‘패턴’ 이론이며 다른 하나는 ‘질서와 전체성’ 이론이다. 패턴 랭귀지는 알렉산더의 두 이론 중 하나인 ‘패턴’ 이론의 핵심이며 『시간을 초월한 건설의 길』(1979) 『패턴 랭귀지』(1977) 『오리건대학의 실험』(1975)로 구성된 시리즈 중의 두 번째 책이다. 세 권의 책이 시기적으로는 역순으로 출간되었기는 했지만, 이 책은 『오리건대학의 실험』에서 밝힌 디자인에서 목표로 해야 하는 유기적 질서의 원리, 참여의 원리, 점진적 성장의 원리, 패턴의 원리, 진단의 원리, 조정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근원이 되는 책이다. 패턴 랭귀지라는 제목은 알렉산더의 환경 구성의 방법론을 매우 잘 반영하고 있다. 인류는 오랜 기간에 걸친 경험을 통하여 축적한 지식을 여러 매체를 통하여 기록하고 전해왔다. 이러한 매체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어일 것이다. 언어는 지식을 기록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식의 기록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때도 사용한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식의 기록은 단어, 재구성 방법은 문법, 새로운 개념은 문장이라 할 수 있다.

즉, 알렉산더는 패턴 랭귀지라는 제목을 통하여 본서의 핵심을 매우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통하여 발견한 우리 주변의 불변요소를 패턴(단어)으로 규정하고, 패턴 랭귀지(문법)를 이용하여 재구성하며, 인간 생활에 보다 좋은 환경(문장)을 구축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1964년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수학적 그리고 기하학적으로 체계화 한 책인 『형태의 합성에 관한 노트(Notes on the Synthesis of Form)』를 통하여 자신의 디자인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1년 후인 1965년에는 당시의 도시계획을 비판하는 「도시는 트리가 아니다 A city is not a tree」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1967년에는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에 환경구조센터를 설립하고 도 시·건축 이론과 실천에 관한 서적의 출판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의 저서나 이론의 대부분은 도시 ·건축 전문가들에게 상당한 비평을 불러 일으켰다. 『형태의 합성에 관한 노트』는 디자인이라는 창조적이고 복잡한 프로세스를 수학적으로 단순화,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비평을 받았다. 『패턴 랭귀지』 또한 많은 사람들의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건축은 매우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분야로서 사회적, 경제적, 법률적인 제한이나 제약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패턴 랭귀지는 이 모든 상황을 무시하는 이상론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부각되었다. 또한, 알렉산더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 패턴 랭귀지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는 것과 전문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항도 지적되었다.

그리고 패턴 랭귀지의 마지막 부인 「시공」 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시공법이 현실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예로, 일본의 영진학원 히가시노고등학교 프로젝트에서 알렉산더는 패턴 랭귀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알렉산더는 건축주 직영방식의 시공법을 주장하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종합건설회사가 공사를 완료하게 되었으며, 직영방식을 고집함으로써 발생한 공사비의 상승과 관리상의 문제는 그의 이론이 현실적인 조건과 합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패턴 랭귀지가 도시 계획이나 건축 사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는 없다. 그와 반대로, 패턴 랭귀지는 현대의 건축 이론과 현실을 역행하는 이론에 가까울 수도 있다. 더욱이, 패턴 랭귀지를 이용하여 도시를 구성 하거나 건축물이나 공간을 구성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환경이 저절로 아름답게 구성되거나 점진적으로 개선되어 나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패턴 랭귀지와 같은 포괄적인 설계이론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환경을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요소 또는 수직적인 구조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구성하여 서로간의 연관성에 주목한 이론 또한 흔치 않다.

이러한 관점에서 패턴 랭귀지는 우리가 항상 접하고 있는 공간이나 모든 건축물에 반복되어 사용되는 불변의 요소를 관찰하고 다른 요소들과의 관련성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비록 실현은 어렵다 할지라도 그 건축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회 집단에 의해 민주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제안하고 시험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253개의 패턴 중에서 문화적인 차이로 인하여 어느 정도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패턴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패턴은 패턴 랭귀지의 초판이 출판된 후 35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주변 환경이나 건축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도시나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에 있어서는 알렉산더가 의도한 것처럼, 도시나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제1부 도시, 제2부 건축에서는 원문의 의도와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제3부 시공에서는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전문용어는 되도록이면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비전공 독자를 위해서 책의 마지막에 용어 해설을 첨부하였다. 하지만, 패턴 랭귀지는 원문이 약 1,2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공학, 건축공학은 물론 언어학, 유전공학, 생물학, 통계학, 시스템공학, 인지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을 인용하여 다루고 있다.

따라서 해당 분야의 서적을 참고하며 번역에 임하였고 단어의 선정에 많은 고심을 하였으나,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는 심려가 크다. 오역이나 잘못된 단어 사용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독자들의 많은 조언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원고를 꼼꼼히 읽고 정리해 주신 편집부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도시 ·건축·소프트웨어 전공자들을 위해서 이 책의 번역을 제안해 주신 인사이트 출판사의 한기성 대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공동 역자인 양시관, 이수빈 그리고 번역 과정에서 많은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연구실 동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2012년 6월

이용근